제목나를 죽여야 보이는 너2022-06-0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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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내가 강남 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치료에 집중하였고 하동에서 쉼을 가졌기 때문에 짐짓 기대하였다. 

나 또한 아내를 따라 병원에 오가는 중에 이명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이명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의외로 이명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 경험과 생각에서 나온 생각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겪는 이명 증상과 아내가 겪는 이명 증상은 똑같지만, 

정도에 있어서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아내는 눈을 뜨면 백색소음이 일상인 낮에도 이명이 들린다. 

자연의 소리가 아닌 자체적으로 청각 회로가 생겨서 나는 소리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나 자신을 곰곰이 돌아보며 결국 내 중심의 이기적인 연약함을 보는 기회가 되었다.



때마침 음악 방송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온다. 

“공명이 필요한 날이죠. 상대방의 슬픔과 아픔을 그대로 함께 느끼고 인정해주는 과정입니다. 

아픈 데가 어디인지 또 얼마나 아픈지 진정으로 느끼는 공명의 손길, 

사랑하면 사랑받고 잘하면 칭찬받고 울면 눈물 닦아주고… 

공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굶주리고 맙니다.” 

이 말을 들으며 치료 중인 아내와 관계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공명이 필요한 아내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피아노 건반이 88개인 이유는 

더 만들어서 더한 저음이나 고음을 내봐야 편치 않거나 들리지 않기 때문이란다. 

문득 이런 피아노의 원리가 소통의 원리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려주어도 내 가청음파의 폭이 좁다면 

혹은 상대의 가청음파가 그렇다면 들리지 않을 것이다. 

가청음파란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를 말한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서 그 범위는 달라지기 때문에 

가청 음파 주파수가 맞아야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같이 끊임없이 마음의 가청음파를 서로 맞추어 나가는 노력이 소통의 원리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하고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대신 하였다.


그러려고 하다 보니 끊임없이 내가 힘들여 알게 된 지식, 

삶으로 쌓아 올린 경험, 나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습관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하다. 

좀 부풀려 말하면 나를 죽여야만 보이는 너이다. 

그래도 내 모습 이대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사랑의 한 중심에 있다는 것 때문에 회개하고 다시 시작한다. 

외적으로는 환자 같지 않고 겉보기에는 점점 밝아져 보일지라도 

내가 듣지 못하는 이명을 듣고 있다는 것, 

그 회로를 지우기 위해 부단히 치료 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감사하다

김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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