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격 성장으로서 온전성 회복’ 이라는 주제로 이마고 어드밴드 과정에 참여했다. 목사로 아비로 남편으로 용서받은 죄인으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 REALLY)? 이런 질문을 앞에 설 때면 마치 잔잔한 호수가 일렁이듯 역동이 일어난다.
우리 각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걸작품으로서 나(참 자아)가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한 옷을 입게 되는데 이게 남들에게 보이는 가면이고 새장 속에 스스로 갇혀 있는 모양이다. 새장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구체적인 방법이 온전성을 회복하는 여행이다. 그중의 하나가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다.
매시간 강의가 끝나고 워크숍을 하였다. 둘씩 짝지어 내 인생에 감사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것이 왜 내게 그렇게 중요한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눈다. 내 차례가 되어 감사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분은 내가 힘들 때 물질적으로도 도움을 주신 분이고, 목회 여정에도 큰 도움을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고백이 되질 않았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왜 그럴까?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분에게 도움을 받은 것은 차고 넘치는데 나의 존재를 인정받은 적이 없다는 생각이 감사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공급자였지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은 없어 서로 연결되는 경험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충격이 너무나 커서 그날 종일 얼떨떨했다. 행복한 관계를 세워가는데, 필요를 채워주는 감사와 존재 자체를 받아 주는 인정이 같은 무게로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유명한 원숭이 애착 실험이 있다. 새끼 원숭이를 우리 안에 넣고 행동을 관찰하면 평소에는 헝겊 원숭이 쪽에 있다가 배가 고플 때만 철사 쪽에서 먹고 되돌아오는 행동을 관찰한 것이다. 필요를 채워주는 것보다 포근한 안정감이 우선한다는 것, 사랑은 피부를 통한 감각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즉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가난해도 힘들어도 감정을 함께했던 사람에게 감사와 행복을 더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해리 할 줄 박사는 연구에만 몰두하느라고 결국 부인이 떠나가고, 아이는 죽게 되고 두 번째 부인은 큰 병에 걸리고 본인은 술에 빠지는 등 사랑의 본질을 연구한 자신의 삶은 오히려 불행했다. 순간 나는 어떤 부모였을까? 목사일까? 필요를 채워주는… 출생하면 이름을 지어주고 장례도 치러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인정해주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했음을 각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렇게 배울 수 있고 성장하는 기회가 되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김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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